[박근종 칼럼] 정부 총력전에도 환율 고공행진, 경제 취약성 직시 근본적 체질 개선을

편집국 / 기사승인 : 2025-12-24 12: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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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과 공조하고, 수출기업에 달러를 풀라고 독려하는 등 온갖 대책을 내놓고 한국은행은 외환스와프 연장을 발표하며 총력 대응하고 있지만 환율 불안이 좀처럼 잦아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2월 17일 장 중 한 때 달러당 1,480원을 8개월 만에 돌파한 데 지난 12월 18일에는 1478.3원(주간 종가)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넘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적 관세 인상으로 불안감이 확산한 지난 4월 이후 8개월 만이다.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이 650억 달러(약 95조 원) 규모의 외환스와프 계약과 해외 투자 자산에 대한 10% 전략적 ‘환 헤지(Foreign Exchange Hedge │ FX Hedge │ 현재 시점의 환율에 미리 고정하는 것)’ 기간도 각각 내년까지 1년 연장을 하였으나 외국환평형기금 활용 등의 환율 안정 조처가 통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시장이 세운 심리적 마지노선이 잇따라 무너지면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체감 환율은 1,530원대 후반까지 치솟으면서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엔화’와 ‘원화’가 ‘동조화(Synchronization)’하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이 19일 기준금리를 0.75%로 인상하며 30년간 유지해 온 0.5%의 금리 벽을 무너뜨렸음에도 지난 12월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NHK 등에 따르면, 지난 12월 19일(현지 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7엔대 후반까지 상승했다. 이는 전일 대비 약 2엔가량 오른 것으로, 엔화 가치는 약 한 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의 확장재정 기조가 강화될 경우 원화 약세 역시 추가로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1,400원대 후반 환율이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로 자리를 잡고 고착화(固着化)하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월 18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국내 금융시장은 대체로 안정적이고 국고채 금리도 다소 하락했다.”라면서도 이같이 평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위기’ 표현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12월 17일 물가안정 운영상황 점검 기자회견에서 “전통적인 금융위기는 아니지만 성장과 물가, 양극화 측면의 위기일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통상 환율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3% 포인트 가량 뛴다는 것이 한국은행 자체 추산이다.

환율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으로 식품ㆍ외식 가격이 뛰어 중산층과 서민층이 소비를 줄이면 자영업자는 매출 부진에 허덕인다.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면 주식·부동산 가격이 올라 계층ㆍ세대 간 자산 양극화도 덩달아 심화한다. 실제 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의 내상은 깊어지고 있다. 당장 우려되는 건 들썩이는 물가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현재 수준의 환율이 계속 이어지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현 전망치인 2.1%에서 2%대 초중반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장 내수 위축에 신음하는 자영업자, 대기업보다 환율 대응 능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입을 피해도 심각하게 우려된다. 여기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우려한 ‘환율 발(發) 양극화 심화와 사회적 갈등 격화’도 결단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다급할 수밖에 없는 정부가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효과가 신통치 않다는 게 걱정이다. 정부는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 투입도 모자라 규제 완화 카드까지 꺼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이 달러를 비롯한 외화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 12월 18일 발표한 ‘외환 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은 은행과 기업 등에 적용하던 외화규제를 풀어 달러 공급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 은행들은 위기에 대비해 충분한 달러를 의무적으로 쌓아야 하는데(고도화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내년 6월 말까지 관련 제재를 받지 않는다. 기업들도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 설비자금뿐 아니라 운영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된다.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가 절정이던 1998년 3월 수준 1,488.87원에 턱밑까지 근접한 상황에서 정부가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환 헤지(FX Hedge)’ 비율 조정과 외화채 발행을 검토하고, 수시로 구두 개입에도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도 지난 12월 18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오후 삼성전자, SK·현대자동차·LG·롯데·한화·HD현대 그룹 등 7개 기업 관계자를 긴급 소집 환율 대응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기업, 금융기관을 동원해 달러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것은 미봉책(彌縫策)이자 ‘대증요법(對症療法 │ Symptomatic treatment)’일 뿐 결단코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

지속되는 원화 약세는 수급 불균형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정도로는 원화 약세 흐름의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한·미 금리 역전이 오래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과 개인 가릴 것 없이 해외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서학개미와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로 떠나고, 기업들은 규제와 고비용 구조를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상황에서는 외환 수급 불일치를 해소할 수 없다. 여기에 외국인들의 주식매도와 3,500억 달러(약 494조 원)의 대미(對美) 투자 등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번 대책이 외려 은행과 기업의 달러 빚만 키워 더 큰 위기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

고환율은 외풍에 취약한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우려가 크다. 물가가 다락같이 올라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이 팍팍해지고 내수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환율 상승은 수출 호재이지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오히려 채산성이 나빠진다. 저성장과 물가 앙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이 현실로 다가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번 규제 완화로 환율 변동성을 노리는 초단기 자금이 국내 외환시장을 교란할 위험성도 커졌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199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내 금융시장 개방 폭이 넓어졌다. 규제가 완화된 만큼 투기적 자금의 수상한 흐름에 대한 감시와 외환거래에 대한 보고 제도를 강화하는 등의 보완 조치 마련이 중요해졌다. 자칫 잘 못하다가 민생이 벼랑에 내몰릴 수도 있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고환율로 이익 또는 손해를 보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사회적 화합이 어려워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환율 안정의 신출귀몰(神出鬼沒)할‘비급(祕笈)’이나 ‘묘책(妙策)’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저간의 시장 사정을 고려하면 정부의 비상 대응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자칫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이 뚫리는 경우 쏠림 현상이 더욱 급격해지고 가팔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원화 약세는 수급 불균형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11월까지 약 90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지만 해외 직간접 투자로 1,500억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효과 없는 억지 대책에 매달리기보다 고환율 원인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그에 맞는 지속 가능한 전략을 짜야 한다.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환율이 고공 행진하는 건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아니라 경제 체질의 취약성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투자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풀지 않는 것 역시 원화 가치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원화 판(版)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인 셈이다. 정부는 외환 변동성의 단기 충격에 대비할 비상 대응 체제를 가동하는 등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총력전을 펴야만 한다. 동시에 구조개혁과 규제 완화, 재정 건전성 강화 등을 통해 경제 체질을 서둘러 개선해야 할 것이다.

물론 환율의 급변동을 막기 위해 시장 개입과 같은 단기 대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은행, 기업의 팔을 비틀고 목을 죄는 식의 ‘관치’로는 환율 안정을 기약하기 힘들다. 근본 해법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제 체질을 과감히 전환하는 것뿐이다. 경제 체질의 구조적 취약함이라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결코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니다. 환율은 한 나라의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과 ‘신인도(Sovereign credit rating)’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만큼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방증(傍證)이며 이 때문에 달러 수급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다만 단기 대책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시그널을 꾸준히 줘야만 한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구조개혁을 서두르고 돈 풀기도 자제해야 한다. 환율 불안이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 전반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재정과 통화, 산업 등을 아우르는 정교한 대책도 서둘러 준비하기를 바란다. 또한 내년 4월로 예정된 세계국채지수(WGBI │ World Government Bond Index) 편입을 계기로 장기 해외 자금의 유입이 늘어나는 것에 발맞춰 국내 채권시장 확대와 선진화 조치도 꼼꼼히 챙기고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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